재벌에 불안감 못 버린 정부…‘규제’ 못 박고 CVC 첫발

경제
재벌에 불안감 못 버린 정부…‘규제’ 못 박고 CVC 첫발
정부 '일반 지주사 CVC 제한적 보유 추진 방안'…금산 분리 훼손 우려에 설립~행위 '안전장치' 둬
재계 "설립 지분율과 조달률 제한 둔 것 아쉬워"…공정위 "전략 투자 촉진해 시너지…유인 충분해"
  • 입력 : 2020. 07.31(금) 07:06
  • 김부삼 기자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정부는 기업 주도형 벤처캐피털(CVC) 허용안을 내놓으며 각종 '안전장치'를 뒀다. CVC를 이용한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를 원천에서 차단하겠다는 목표지만, 과도한 규제가 따라붙었다는 지적이다. 시장에서는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30일 기획재정부·중소벤처기업부·금융위원회와 함께 내놓은 '일반 지주사의 CVC 제한적 보유 추진 방안'을 보면 CVC 관련 주요 규제는 ▲일반 지주사가 지분을 100% 보유한 완전 자회사 형태로 설립 ▲펀드 조성 시 결성액의 40%까지만 외부 조달 가능 ▲자본금의 200%까지만 차입 가능 등이다.
이와 관련해 공정위 관계자는 "CVC를 통해 자금이 벤처기업 등 생산적인 분야로 흐를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되, 안전장치를 세밀히 마련해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에 악용되는 등 부작용 우려는 해소했다"면서 "이런 규제는 전반적으로 '남의 돈' 활용을 제한하기 위한 조처"라고 설명했다.
이를 바라보는 시장의 시선은 차갑다. 설립 규제에 관해 관련 업계에서는 당초 "지주사와 계열사가 공동 출자해 CVC를 설립할 수 있게 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다. 스스로 돈을 버는 '사업 지주사'가 아니라면 CVC를 자기 자본금만으로 설립하기 어려울 수 있어서다. 그런데도 정부는 CVC 지분 구조에 완강한 입장을 지킨 것이다.
펀드의 외부 자금 조달 규제의 경우 평가가 엇갈린다. 우선 "외부 자금 조달이 가능하게 돼 다행"이라는 반응이다. 그동안 공정위 등은 미국 구글의 CVC인 캐피털지(CapitalG)가 자기 자본금만으로 투자하는 점을 들어 외부 자금 조달 허용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해왔다. 다만 40%라는 한도에 관해서는 아쉽다는 목소리가 크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재계 관계자는 "외부에서 자금을 많이 조달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출자자(LP)에 의한 CVC 감시를 강화하는 효과를 낼 수 있는데 조달률에 한도가 생겨 아쉽다"면서 "CVC를 허용하는 주요 선진국은 외부 자금 조달률을 특정 수준으로 제한하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자본금의 200%까지만 차입할 수 있게 한 점도 과도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실제로 200%라는 수치는 일반 벤처캐피털(VC)의 제한치(900~2000%)에 한참 못 미친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총괄 전무(전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는 "CVC가 제한적으로 허용돼 당초 정책 효과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면서 "특히 완전 자회사로만 설립하게 한 점, 외부 자금 조달률 한도를 40%로 제한한 점, 부채 비율을 200%로 제한한 점은 정책의 실효성을 떨어뜨린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 ▲해외 투자는 총자산의 20%까지만 가능 ▲투자를 제외한 다른 금융업 겸영 금지 ▲총수 일가 및 금융 계열사의 펀드 출자 금지 ▲총수 일가 지분 보유 기업 및 소속 집단 계열사 등에 투자 금지 ▲출자자 현황 및 투자 내역 등을 공정위에 정기적으로 보고 등 규제도 달렸다.
재계에서는 실질적인 참여도가 떨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완전 자회사로 만들라는 것부터 외부 자금은 40%까지밖에 못 끌어오고, 해외 투자도 마음껏 하지 못하게 하는 등 것까지 설립부터 각종 행위까지 규제로 점철된 안"이라면서 "실제로 얼마나 많은 대기업이 CVC를 만들겠다고 나설지는 의문"이라고 진단했다.
정부의 생각은 다르다. 이런 제도하에서도 재계는 CVC를 충분히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 공정위의 판단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CVC가 일반 지주사 안으로 들어간다면 그룹 차원의 전략적 투자를 촉진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면서 "지주사 체제에 제공되는 기본적인 세제 혜택도 있어 재계가 참여할 유인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부삼 기자 kbs614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