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두천/고명현기자]
동두천시는 2021년부터 「음악이 흐르는 마을」이라는 제목으로 「문화가 있는 오늘, 동두천」문화의 날 행사를 추진하고 있다. 「음악이 흐르는 마을」은 다른 행사들과는 다르게 마을주민들이 직접 기획하고 섭외하고 무대를 꾸민다. 현수막도 직접 달고, 포스터를 출력해 집집마다 홍보하는 수고도 아끼지 않는다. 이렇게 주민들이 적극적인 이유는 이 프로그램이 마을의 역사에 기인해서 그렇다. 6~70년대 기지촌의 아픈 역사를 지닌 턱거리에서 시작된 색다른 음악 공연, 어떤 사연이 있는지 자세히 들여다보자.

◆ 신촌블루스 턱거리에 오다…세대를 아우른 공연으로 성황 이뤄

지난 2022년 7월 1일 금요일 저녁 동두천시 불현동에 위치한 광암동 다목적회관에서 한국 대중음악의 명밴드 신촌블루스의 공연이 열렸다. 마을주민과 동두천 시민들은 물론이고 양주, 포천 등 인근 도시에서도 공연을 찾아 100석 규모 광암동 다목적회관이 부족할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신촌블루스와 함께하는 음악이 흐르는 마을 공연이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공연을 준비하는 마을주민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공연 기획을 해본 전문가들도 아니고, 광암동다목적회관도 전문공연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명한 뮤지션이 마을을 찾는데 공연준비가 불편하지는 않을까, 관객들은 많이 와줄까 걱정거리가 산더미 같았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함께했다. 포스터를 돌리고, 홍보 현수막을 묶고, 손수 조명도 달았다. 불현동사무소에서는 어두워진 객석 조명을 환하게 바꾸어 주었다. 마을 통장님은 객석 의자를 날랐다. 협동조합원들은 음악인과 함께하는 소박한 저녁식사를 마련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촬영으로 대체한 2021년과 달리, 대면 행사로 전환한 첫 행사이다 보니 신촌블루스의 공연은 어느 때보다 열기가 더했다. 마을 어르신들과 청장년층은 물론이고 아이들의 손을 잡고 나온 가족들과 젊은 커플들도 보여 다양한 관객층이 턱거리 마을에 모였음을 알 수 있었다. ‘아쉬움’, ‘골목길’ 등 신촌블루스의 대표곡이 나올 때마다 환호성이 터져 나왔으며, 신촌블루스의 리더 엄인호는 과거 동두천으로 외국 팝송 LP를 구하러 왔던 인연을 이야기하며 관객들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연이은 앵콜로 공연은 약속한 시간을 넘겨 오후 8시 20분에서야 마무리됐다.

◆ 가수 김국환의 선물 “꽃배 들어온다”

지난 8월 26일에는 ‘타타타’, ‘꽃순이’로 유명한 가수 김국환이 턱거리 마을을 찾았다. 흥겨운 트로트 메들리로 마을 어르신들을 일으켜 세워 덩실덩실 춤판이 벌어진 공연이었다. 트로트 가수들은 대개 지역 행사에 출연해 20분 남짓 서너 곡을 부르고 퇴장하는 것이 보통인데, 김국환은 이날 한 시간 삼십 분 동안 열창을 보여주었다. 열정을 다한 가수와 그 열정이 고마운 마을 사람들은 그날도 저녁 늦게까지 식사를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친밀한 대화 중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김국환의 신곡 ‘배 들어온다’와 곧 개최될 턱거리문화제의 꽃배 퍼포먼스가 유사하다며 ‘배들어온다’를 턱거리문화제 주제가로 써도 되냐고 물었고 김국환은 흔쾌히 허락하였다.

며칠이 흐른 뒤, 마을 주민들은 김국환 측으로부터 음원 파일 하나를 받았다. 제목은 ‘꽃배 들어온다’였다. 음악을 들은 주민들은 깜짝 놀랐는데, ‘배들어온다’의 가사 중 “인천 앞바다에 배 들어온다”라는 가사를 “이담 동두천에 꽃배 들어온다”로 바꿔 김국환의 목소리로 녹음한 음원이었다. 공연에 함께 동석한 작사·작곡자 김순곤(조용필의 ‘못찾겠다 꾀꼬리’, 나미의 ‘인디언 인형처럼’의 작사가이기도 하다)이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김국환과 함께 마을문화제를 위한 주제가를 녹음해 보내온 것이다. 이쯤 되면 궁금증이 생긴다. 과연 턱거리 마을에 어떤 꿀단지가 숨어 있길래 한국 최고의 가수들이 이다지도 열과 성을 다하는 걸까.

◆ 턱거리 마을의 희노애락…새로운 동두천 시대적 패러다임 제시

턱거리 마을은 70~80년대 동두천 보산동 못지않게 화려한 동네였다. 미군부대 캠프 호비를 끼고 있는 덕분에 다양한 서비스업이 발달했으며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북적였다. 마을엔 일거리가 넘쳤고, 활황이던 기지촌에서는 의례 그렇듯이 턱거리에는 개도 달러를 물고 다닌다고들 했다. 마을의 쇠락은 20여년 전 걸프전으로 미군이 재배치되면서 시작되었다. 미군 병력이 감소하기 시작했고 대부분의 병력이 평택으로 이전하고 부대만 남은 지금은 과거의 영화가 무색하게 고요한 마을이 되었다.

마을 주민들이 변화를 추동하게 된 것은 턱거리의 역사적 가치를 깨닫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기지촌 여성들의 가슴 아픈 삶, 다양한 서구문화를 처음 받아들였던 곳, 미군과 함께 했던 턱거리 마을의 희로애락이 현재 한국 사회를 만들어낸 시작점이었다는 사실을 각성하게 되었다. 턱거리 마을이 중요한 이유는 마을의 역사가 고스란히 동두천이라는 도시의 역사를 응축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러한 이유로 턱거리의 변화는 한국 현대사에서 동두천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70년 안보를 위한 특별한 희생을 무엇으로 보상받을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 턱거리 마을 주민들은 무엇을 요구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 마을을 바꿔보겠다는 의지를 내보인다. 그 방향은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마을의 문화적 변화이다.

턱거리사람들협동조합은 2019년부터 2021년까지 경기도마을종합지원사업, DMZ에코뮤지엄사업을 통해 턱거리마을박물관, 우리동네 부뚜막을 만들고 지역 청년들과 함께 마을기획단을 조직해 마을산책, 순자문화제 등 턱거리마을만이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문화적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마을신문, 한글학당, 주민 인터뷰, 마을방송국 등 주민의 목소리를 듣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마을문화제를 통해 마을 내외 사람들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광암·탑동 주민위원회는 마을 발전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너나들이협동조합을 만들고 동두천시로부터 동두천천(川) 하천관리 위탁을 받는 등 마을 자립을 위한 초석을 놓고 있다. 하천변에 꽃밭을 조성해 사람들이 찾는 꽃이 가득한 마을을 만들겠다는 꿈을 실현하고 있다.
현재 한국 사회는 그동안 압축성장의 대가로 사회안전망이 느슨해지고 각자도생의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공동체성을 지향하는 문화도시, 에코뮤지엄 등의 문화정책은 물론이고 지속가능한 지역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사회적경제 정책 등 많은 기관들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동두천시도 민선8기 출범과 함께 “동두천을 새롭게, 시민을 힘나게”를 시정구호로 정하고 다양한 정책들을 펼치고 있으며 특히 턱거리마을의 이러한 주민 주도 활동이 지역 공동체의 새로운 복원이라는 시대적 패러다임 관점에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 기억하고, 말하고, 회복하라!

예정대로라면 11월 5일 개최되었을 「제3회 턱거리 마을문화제」의 슬로건은 “기억하고, 말하고, 회복하라!”였다. 마을의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의 삶을 증언하며 모두가 소외되지 않는 새로운 공동체로 회복하리라는 큰 뜻을 담은 슬로건이다. 이 슬로건을 처음 제안한 턱거리마을박물관 자문위원 건축가 곽재환 선생은 “턱거리마을이 가진 이야기는 한국사회가 나아가야 할 보편적인 미래 가치를 말하고 있다”면서 “동두천(川)이 신천과 만나 한탄강을 거쳐 서해로 나가는 것처럼 널리 흘러야 할 가치”라고 말했다.

작은 마을 축제의 구호치고는 거창하지만, 그만큼 턱거리 마을이, 동두천이라는 도시가 한국사회에 제시하는 철학이 크다는 뜻일 것이다. 예정된 일정이 국가 애도기간에 포함되어 축제는 취소되었지만 마을 주민들의 간절한 회복의 에너지는 여전히 생생하다. 다음 기회에 꼭 이 슬로건을 가지고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 ‘꽃 배 들어온다’를 합창하며 마을을 휘감아 도는 동두천(川) 물줄기에 희망의 꽃 배를 띄우길 기원한다.

동두천/고명현기자 hyungo@sudokwon.com 동두천/고명현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