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의 아이오닉 5 생산라인.(사진=현대자동차그룹 제공)

[김부삼 기자]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5일 반도체·자동차·배터리 업계와 미국의 반도체 지원법(CHIPS Act)과 인플레이션 감축법(the Inflation Reduction Act) 등에 대한 공동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장관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반도체·자동차·배터리 업계 간담회'를 주재하고, 미국의 최근 입법 동향과 관련해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고 산업부가 밝혔다.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9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자국 반도체 산업에 527억 달러의 재정을 지원하는 반도체 지원법에 서명했다.
다만 법안에 따라 미국 내 반도체 관련 신규 투자를 진행하는 기업은 25%의 투자세액공제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지원을 받은 기업은 이른바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에 의해 10년간 중국이나 우려 대상국 내 신규 투자가 제한된다.
가드레일 조항은 중국의 반도체 산업 확장을 겨냥하고 있지만, 이 조항으로 인해 중국 현지에서 D램과 낸드플래시를 생산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우리 기업의 신규투자·장비교체에 차질이 우려된다.
지난 16일(현지시간)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한 인플레 감축법의 경우, 북미(미국·캐나다·멕시코)에서 조립되지 않는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안에 따르면 국내에서 생산해 미국 현지에서 판매 중인 현대차 아이오닉5와 기아 EV6 등 주력 모델은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된다.
또 보조금을 받기 위해선 일정 비율 이상 미국이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한 국가에서 배터리 광물을 조달해야 하고, 배터리 부품도 일정 비율 이상 북미산을 사용해야 한다.
법안 시행으로 내년부터 보조금을 받을 수 없게 되면 아이오닉6, EV9 등 신규 모델을 통해 미국 시장 점유율을 올리겠다는 현대차그룹 구상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배터리 업계도 광물·부품 요건을 당장 맞추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 장관은 이날 간담회에서 "최근 미국은 반도체 지원법, 인플레 감축법 등을 통해 첨단 산업 육성과 자국 산업 보호를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어 "당초 반도체 지원법 초안에는 가드레일 문안이 없었으나 의회 논의 과정에서 추가됐다"며 "전기차 보조금 개편 내용이 포함된 인플레 감축법도 법안 공개 후 약 2주 만에 전격적으로 통과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간선거 등) 미국 국내정치 요소, 중국 디커플링(탈동조화) 모색, 자국 산업 육성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가드레일 조항과 전기차 보조금 요건 등 우리 기업에 부담이 되는 내용도 (법안에) 포함돼 있다"며 "미국에 전기차를 수출하고 있는 우리, 독일, 일본 등의 우려가 큰 만큼 민관이 상시 소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美의회 설득, 대미 아웃리치 전개…유사 입장국과 공조 강구
산업부는 미국의 반도체 지원법과 인플레 감축법 움직임에 대해 기민하게 대처하는 모습이다.
앞서 이 장관은 지난 9일 반도체 지원법 발효 직후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에게 가드레일 예외와 관련해 긴밀한 협의를 당부하는 서한을 전달한 바 있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2.08.22.

산업부는 반도체 지원법과 관련해 미 상무부와 범용 반도체 등에 대해 협의하며 업계 부담 최소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방침이다. 또 한미 반도체 파트너십 대화, 공급망·산업대화 채널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우리 입장을 강조할 계획이다.
국내 완성차 업계에 큰 타격이 예상되는 인플레 감축법의 경우, 세계무역기구(WTO) 협정과 한미 FTA 위배 가능성에 대해 미국에 우려를 제기한다는 방침이다.
또 미 재무부가 연내에 배터리 광물·부품 요건에 대한 하위 규정을 발표하기 전에 우리 기업의 요구를 반영 위해 미 정부와 의회 등과 지속 협의를 이어 나갈 계획이다.
다음 달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은 미국을 방문해 반도체 지원법, 인플레 감축법을 집중 논의할 예정이며, 그에 앞서 이달 안성일 신통상질서전략실장도 미국을 방문한다.
이와 함께 기업인을 중심으로 미 알라바마·조지아주 등 우리 배터리·자동차 기업이 분포해 있는 지역을 대상으로 집중적인 '아웃리치'(대외접촉)도 전개한다는 계획이다.
정대진 산업부 통상차관보는 지난 2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미국 정부에 우리 기업의 혜택을 최대화하고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이야기할 예정"이라며 "개별 업종·, 개별 업이 요구하는 입장을 종합해서 협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정 차관보는 다만 WTO 제소 여부와 관련해선 "분쟁 절차는 국가 간 해결 방안의 최종 단계"라며 "일단 미국 정부와 최대한 협의할 예정이다. 그것이 가장 일차적 단계"라고 강조했다.
미국 측과의 양자 협의와 함께 유럽연합(EU), 독일, 일본 등 우리와 유사한 우려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공조 방안도 적극 강구할 방침이다.
업계에서는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가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와 함께 다음 달 인플레 감축법 관련 공동 입장문을 발표하고 미국 측에 전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정 차관보는 "각국 정부의 입장을 여러 채널을 통해서 알아보고 있다"며 "산업부 내부적으로도 유럽이나 독일 쪽으로 연락하고 있고, 업계 차원에서도 협조 움직임이 있다"고 전했다.
업계의 자구책도 마련되고 있다. 현대차는 미국 현지 공장 조기착공을 통한 생산계획 조정 등을 검토 중이며, 각 기업들도 앨라배마·조지아 벨트 등을 중심으로 대미(對美) 아웃리치를 병행할 예정이다.
배터리 업계의 경우, 호주와 칠레 등 미 FTA 체결국의 광산투자 확대 등을 통해서 현재 중국을 중심으로 수입하고 있는 핵심광물의 공급망을 다변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산업부는 민관의 '원팀'(One Team) 대응을 위해 통상정책국장을 태스크포스(TF) 팀장으로 하는 합동 대응반을 구성하고, 외교부와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도 함께 대응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김부삼 기자 kbs6145@naver.com 김부삼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