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사진=롯데문화재단 제공)

[김부삼 기자] "콩쿠르는 결과가 나왔다고 끝나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그때부터 시작이죠. 그 이름을 얻은 것보다 이를 유지하고 생명력 있는 긴 커리어를 만드는 게 어려워요."
지난 5월말 시벨리우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 우승한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27)는 "올해만큼 변화가 많았던 시기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런 그가 콩쿠르 이후 국내 관객들을 처음 만난다. 오는 11월10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부산시립교향악단 60주년 기념 공연에 협연자로 나선다. 이보다 앞선 11월7일엔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리는 K클래식 공연 무대에 선다.
27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그는 "콩쿠르 준비 과정부터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연주생활을 하고 있다"며 "음악적인 폭도 더 넓어졌고, 듣는 귀도 달라졌다. 추구하는 연주 스타일도 계속 바뀌고 있다"고 밝혔다.
"콩쿠르 이후에 반짝였다가 사라지거나, 정체하는 연주자들도 많이 봐요. 저는 그게 두려워요. 항상 호기심을 잃지 않고 진지하게 그리고 솔직하게 음악을 대한다면 꾸준히 음악을 이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미 2015년 9년 만에 배출한 이탈리아 파가니니 콩쿠르 우승자 타이틀로 주목받았던 그였다.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유럽 무대에 대한 갈증으로 2년여 전 베를린으로 건너왔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설 자리는 좁았다. 홀로 연습하며 스스로 계속 질문과 고민에 휩싸였고, 7년 만에 다시 콩쿠르에 도전장을 냈다. "지난해 12월에 콩쿠르 출전을 결심했는데, 당시 갈 곳을 잃어버린 느낌이었다"고 돌아봤다.
그 결과 우승이라는 좋은 성적을 거뒀고, 더욱더 값진 경험과 기회를 얻었다. 더 많은 무대에 서고 싶었던 바람대로 오는 12월 헬싱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비롯해 뉘른베르크 심포니, 홍콩필하모닉과의 협연 등 내년까지 일정도 꽉 찼다.
하지만 무엇보다 값진 건 심사위원장이었던 지휘자 겸 바이올리니스트 사카리 오라모의 멘토링이라고 했다. 내년 4월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공연도 그와 함께 무대에 선다.
"콩쿠르 이후 오라모 지휘자가 베를린 필하모닉 지휘를 위해 베를린에 왔는데, 친절하게 저를 따로 불렀어요. 악기를 함께 연주하며 한 시간 동안 음악 얘기를 나눴죠. 젊은 아티스트에게 이렇게 관심있는 지휘자는 없어요. 순수하게 음악 얘기를 할 수 있는 게 즐거워요. 정말 좋은 인연을 만났죠."
그는 "콩쿠르가 모든 연주자를 위한 관문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했다. 다만 "인지도를 얻고 세상에 나의 연주를 알릴 좋은 기회"라고 덧붙였다.
"제가 그랬듯이 하나의 동기와 자극이 될 수 있어요. 콩쿠르를 준비하며 나의 한계를 시험할 수 있죠. 내가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 또래 연주자들과 어떻게 다른 해석을 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어요."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가 지난달 29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제12회 시벨리우스 콩쿠르 결선에서 연주하고 있는 모습. (사진=시벨리우스 콩쿠르 인스타그램 사진 캡처/minnahatinen)

잇단 권위있는 콩쿠르 우승과 세계 무대 활동으로 '젊은 거장'으로도 꼽히고 있다. 이에 그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면서 "제 연주의 느낌이 계속 젊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앞으로 동시대 음악에 매진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음악인으로서 사명이라고도 강조했다. "어느 순간부터 현대음악을 들을 때 눈물이 났다"며 "베를린에 거주하며 동시대 음악의 중요성을 많이 느낀다"고 했다.
"현존하는 작곡가와의 작업이 매우 중요하게 느껴져요. 그게 낭만주의나 고전곡을 접할 때 새로운 영감도 주죠. 21세기에 살고 있는 음악가가 지금의 음악에 관심 없다는 건 말이 안 돼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음악이 무엇인지 묻는 건 매우 중요하죠."
부산시향 공연에서도 세계적인 현대음악 작곡가 진은숙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연주한다. 2년 전에 이미 자필 악보를 구했을 정도로 관심이 있었다고 했다. 콩쿠르가 끝난 후 지난 6월부터 본격적으로 하루 세 시간씩 연습해왔다.
그는 "고전적이면서 현대적인, 두 가지 면이 있는 흥미로운 곡"이라며 "솔리스트와 오케스트라가 새로운 악기를 만드는 느낌이다. 다른 협주곡에서 보기 힘든 음색"이라고 소개했다.
"저는 현대음악이 쉽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서울의 거리에서 들리는 모든 소리가 현대음악이 될 수 있죠. 이번 공연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하나의 놀이터가 됐으면 좋겠어요. 여러 놀이기구가 있고 관객들이 자신에게 와닿는 걸 충분히 즐기면 되죠."
음악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은 작곡으로 이어졌다. 양인모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곡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매일 작곡도 조금씩 하고 있고, 주변 작곡가 친구들에게 조언도 듣고 있다. "저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써서 연주할 수 있다면 너무 행복할 것"이라며 "대신 정말 곡을 잘 쓰고 싶다"고 말했다.
"여러 공부도 하지만, 밤에 혼자 오선지 앞에 앉아있어요. 알고 있는 음악은 많지만, 한마디 쓰기도 어렵죠. 그때마다 작곡가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느껴요. 그 앞에서 저는 한없이 작아지죠. 하지만 언젠가는 제 음악을 세상에 내놨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에요."

김부삼 기자 kbs6145@naver.com 김부삼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