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재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청와대 이전을 놓고 정면 충돌을 한 데 이어 한국은행 총재 임명을 두고도 첨예하게 대립하자, 윤 당선인측과 국민의힘에서 대통령과 당선인 간 청와대 회동 무용론이 점점 확산되고 있다.
역대 정권 이양기마다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 사이의 약간의 갈등은 있었지만,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 간 신경전은 갈수록 고조되면서 전운이 감돌고 있다. 당선 확정 열흘이 지나도록 청와대 회동 추진에 별다른 진척이 없고, 갈등이 봉합되기는커녕 오히려 새로운 전선으로 확전될 기미를 보이면서 청와대 회동에 대한 회의론이 팽배해지고 있다.
청와대 이전 갈등의 불씨가 사그라들기도 전에 청와대가 발표한 한국은행 총재 인선 발표는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인사권 문제를 두고 갈등을 보이고 있는 청와대와 당선인 측이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 지명을 놓고 또다시 정면 충돌했다.
청와대는 윤 당선인측 의견을 반영한 인선이라고 한 반면, 당선인 측에선 "한국은행 총재 인사 관련, 청와대와 협의하거나 추천한 바 없다"고 완강히 부인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한국은행 총재 이름이 언론에 많이 나오길래 (한은총재 후보자) 두 사람을 (당선인 측에) 물어봤다. 당선인 쪽에서도 이 후보자에게 (총재를)할 의사 있느냐는 확인을 했다고 들었다"며 "기분 좋게 (당선인 측에서) 원하는 바를 들어줬기 때문에 좋아할 줄 알고 오늘 발표한다고 했더니 본인은 합의한 적이 없다는 주장을 했다. 사람이 바뀌었다, 딴 사람을 할 거란 주장도 했다"고 전했다.
장제원 대통령당선인 비서실장은 "(청와대에서) '이창용 씨 어때요?'라고 하길래 내가 '좋은 사람 같다'고 했다. 그게 끝"이라며 "그걸 가지고 당선인 측 얘기를 들었다는데, 당선인 측이라면 저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납득이 가나"라고 되물었다. 이어 "이건 결국 임명 강행을 위한 명분밖에 안 된다"며 "누가 됐든 상대의 의사를 물어보는 게 상호 간 협의인데, 그런 절차는 전혀 없었다. 이렇게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반박했다.
그럼에도 청와대나 당선인 양쪽 모두 표면적으로는 '회동의 끈'을 놓지는 않고 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대통령과 당선인의 회동은 언제든 조건없이 열려야 한다는 것이 청와대와 대통령의 뜻이었음을 잘 알 것"이라며 "그 입장에 변화 없다"고 전했다.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국민을 위한 결실을 낼 수 있다면 여야를 떠나서 누구든지 만날수 있다 라는 입장을 견지해왔다"며 "(회동 문제가)순리대로 해결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와 달리 정치권에서는 청와대 회동 무산의 책임을 둘러싼 네 탓 공방이 격화되면서 진영 대결로 치닫고 있다.
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CBS라디오에서 윤석열 당선자를 향해 "점령군의 태도를 버려야 된다"며 "법을 이렇게 무시하는 태도를, 국민들과 소통하지 않는 이런 태도를 보인다면 그야말로 내로남불이 아니라 '윤로남불'이 될 것이다. 그래서 이게 부메랑이 될 것이고, 취임 전부터 '취임덕'이 와서 제왕적 리더십으로 국민들의 마음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윤 당선인의 최측근인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같은 라디오에서 "역사상 모든 물러나는 정부가 새로 출범하는 정부의 첫 번째 일에 이렇게 딴지를 건 적이 없다"며 "본인들이 5월9일까지 대통령 권한을 행사하겠다, 그러니까 자기 마음대로 하겠다고 하면 굳이 우리도 그렇게 만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이같이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신구(新舊) 권력 갈등 양상이 계속 되자, 양측이 실속 없는 회동에 집착할 바에 차라리 정치적 실리를 추구하는 게 더 득이 될 것이라는 전략적 판단을 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문 대통령으로서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윤 당선인과 각을 세우는 것이 대선 패배로 균열이 간 여권 내부의 지지층 이탈을 차단하고 결집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상책이 될 수 있다.
안규백 민주당 의원은 TBS라디오에 "8월 전당대회까지 당내 원심력이 가속화되는 시기인데 분란을 최소화하고, 구심력 역할을 제대로 할 필요가 있다"며 "당내 단합이 굉장히 중요한데 최근 계파 구도가 부활되는 조짐이 굉장히 우려스럽다"고 걱정했다.
윤 당선인으로서는 청와대와 민주당의 '발목잡기'를 부각시키는 여론몰이로 한동안 냉각기를 이어가는 것이 오히려 거야(巨野)와의 주도권 싸움에서 우위를 점할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 민주당 내에서도 무조건적인 발목잡기에 대한 비판여론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기현 원내대표는 BBS라디오에 "민주당이 대통령 당선된 분을 '저 양반'이라고 하기도 하고 '윤석열씨'라고도 한다. 대선 패배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국민 뜻을 역행하겠다는 것"이라며 "결국 문 대통령까지 저러시니 결국은 정부가 또 한 진영 논리에 빠져서 국민들의 선택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민재기자 iry327@sudokwon.com 강민재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